하루 만에 배럴당 10달러가 넘게 오른다는 건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다. 공급망의 심장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집단적 공포가 숫자로 튀어나온 거다. 2026년 3월 13일 기준 WTI(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전일 108.05달러에서 118.39달러로 하루 사이 9.57% 폭등했고, 장중 한때 119.13달러까지 치솟았다(단기 변동성 감안 필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직후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이란이 실제로 봉쇄에 나설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솔직히 논쟁의 여지가 크다. 월가 일각에서는 단기전에 베팅하며 이번 유가 급등이 오래 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시장이라는 건 가능성의 크기보다 불확실성 그 자체에 먼저 반응하는 속성이 있다. 2026년 3월 13일 기준 공포탐욕지수가 15, 즉 ‘극도의 공포’ 구간에 진입해 있다는 사실은 이 갈등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가 급등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동안, 한국 정유 산업은 전혀 다른 방정식 속에 놓인다. 정유사 사업 구조를 좀 들여다보면 이 역설이 선명해진다. 정유사는 원유를 미리 매입해 정제 공정을 거친 뒤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보유한 원유 재고의 장부 가치는 유가가 오를수록 자동으로 높아지는데, 이른바 재고 평가이익 — 인벤토리 게인이다. 배럴당 10달러 이상의 단기 급등이면 상당한 규모의 평가이익으로 직결될 수 있다.
여기에 크랙 스프레드도 눈여겨볼 변수다. 원유 투입 원가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판매가 사이의 정제 마진인데, 공급 축소 우려가 커지면 석유제품 가격 역시 동반 상승 압력을 받으면서 정제 마진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란발 공급 불안이 실제 물량 감소로 이어질 경우, 정유사 수익성에는 오히려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국내 시장 구조가 이 수혜를 온전히 누리게 두지는 않는다. 2026년 3월 13일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 이후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93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소매 판매가에 상한선을 설정한 건데, 국제 유가 급등 국면에서 정유사의 국내 소매 마진 확대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유가 상승분이 고스란히 국내 판가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수익성의 일부가 정책적으로 잘려나간다.
한국 경제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그림은 더 복잡해진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구조다. 2025년 9월 기준 한국의 상품수입액은 525.3억 달러에 달했으며, 에너지 수입이 핵심 비중을 차지한다. 유가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무역수지에 압력을 가하고, 국내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로 번질 수 있다. 이미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이번 유가 충격은 지정학적 변수가 경제 변수를 순식간에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호르무즈라는 좁은 해협 하나가 전 세계 에너지 시장, 한국의 정유 산업, 소비자 물가를 동시에 뒤흔드는 현실이다. 하지만 월가가 단기전을 점치며 냉정을 유지하려 하듯, 지정학적 리스크는 역사적으로 급격하게 가격에 반영됐다가 협상과 외교의 실마리가 보이는 순간 되돌아오는 경향도 분명히 있다. 118달러라는 숫자가 새로운 균형점이 될지, 아니면 다음 국면 전환의 출발점이 될지는 아직 열려 있다. 정유주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변동성 구간이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다는 점 — 호르무즈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하는 섹터가 어디일지 생각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