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이라는 시간이 쌓인 뒤에야 다시 문을 두드리는 법이 있다. HD현대중공업이 미국 해군 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인 마스가(MASGA)에 재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번 재도전은 약 1조원 규모의 신규 수익원 확보를 겨냥한 것으로, 단순한 수주 다변화라기보다 한국 조선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에 가깝다.
지금 HD현대중공업이 처한 상황은 좀 역설적이다. 수주가 넘쳐서 공장이 모자란 상태다.
이런 와중에 HD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를 HJ중공업 측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단독 보도도 같은 날 나왔다. 호황기에 시설을 판다니 좀 이상해 보이지만, 실상은 유휴 생산 거점을 정리해 핵심 공정의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수주를 더 받기 위해 그릇을 키우기보다, 기존 그릇을 더 단단하게 쓰겠다는 판단인 셈이다. 마스가라는 새 사업 영역에 진입하면서 생산 자원을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흐름이 읽힌다.
솔직히, 마스가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9년 전 첫 도전이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는 점은 이번 재도전의 무게를 더한다. 그런데도 다시 나선 배경에는 미국 측의 태도 변화가 있다. 미 군함 MRO 장외 작업에 대한 관세 유보 승인이 병행 보도됐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자국 조선 역량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동맹국 조선소를 실질적 파트너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정책 차원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경쟁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연구거점을 마련했다. 마스가라는 단어 하나를 중심으로 한국 양대 조선사가 동시에 미 서부 해안을 겨냥하는 모양새인데, 이 경쟁이 단순히 수주 물량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구센터 설립은 단기 수주가 아니라 기술 표준화, 미군 요구사항 내재화, 현지 인력 네트워크 구축을 겨냥한 중장기 포석이다. 한국 조선업이 민간 상선 시장에서 쌓아 온 기술 신뢰도를 방산·MRO 시장으로 옮겨심으려는 시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다.
마스가의 낙수효과가 중소 조선사로 퍼진다는 보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형 조선사가 MRO 사업의 중심축을 잡으면, 부품 공급·하청 정비·기자재 납품 등 연관 생태계 전반에 수요가 흘러내려간다. 특정 기업의 수주 이벤트라기보다 산업 지형 자체가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
물론 낙관만 하기엔 이른 지점도 있다. 미국 방산 MRO 시장은 보안 요건, 현지화 비율, 의회 승인 절차 등 진입 장벽이 복층으로 쌓인 구조다. 관세 유보 승인이 났다고 해서 바로 시장이 열리는 건 아니다. 한국 조선소가 미군의 요구 수준을 실제 공정에서 충족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제도적 마찰이 생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방향성은 꽤 뚜렷해 보인다. 2025년 9월 기준 한국의 상품수출이 679억 달러, 상품수지 흑자가 154억 달러를 유지하는 외형적 기반 위에서, 조선업은 민간 선박 수주 호황과 방산·MRO라는 두 개의 성장 엔진을 동시에 가동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1조원 규모의 마스가 재도전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조선업이 단가 경쟁에서 기술·안보 파트너십 경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지금, 9년 전의 실패 경험이 — 어쩌면 — 가장 정밀한 나침반이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도전이 늘 더 날카로운 법이다.
비전문가의 한 줄 평: 9년 전 실패했다는 게 오히려 더 공부 많이 해서 다시 왔다는 뜻 아닌가요, HD현대 이번엔 진짜인 것 같아서 조금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