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에너지 유통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진이 얇고, 원자재 가격에 끌려다니고, 사이클이 돌아올 때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SK가스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주식이 싼 건지, 아니면 싸 보이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게 지금 이 글의 목적이다.
2026년 5월 1일 기준 주가는 야후 파이낸스 기준으로 289,000원이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 기준 2026년 예상 EPS는 27,168원이고, 컨센서스 PER은 10.6배다. 목표주가 평균은 304,000원, 현재 주가와의 괴리는 5% 남짓이다. 표면만 보면 그렇게 싸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런데 숫자를 조금 더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컨센서스는 울산GPS 가동이 안정화되는 시나리오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에프앤가이드 기준 강세 시나리오에서 EPS는 32,602원까지 올라간다. 같은 10.7배 멀티플을 적용하면 적정가는 349,000원이다. 지금 주가에서 약 20%가 더 올라야 하는 숫자다.
내가 이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25년 연간 실적이 나왔을 때다. 에프앤가이드 기준으로 FY2025 영업이익은 4,428억원, 전년 대비 54% 넘게 뛰었다. 매출도 7조 6,763억원으로 8% 성장했다. CEO 윤병석은 “지난해 불확실한 국제 정세와 석유화학 업황 침체 속에서도 당사는 LPG와 LNG·발전사업이 호조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석화 업황이 바닥을 헤매던 시기에 이 정도 숫자를 냈다는 건, 포트폴리오가 실제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단순히 LPG 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라, 발전 사업이 완충재 역할을 했다는 증거다.
LPG 유통 너머에 있는 수익 구조를 봐야 한다
에프앤가이드 기준 세그먼트 데이터를 보면 LPG 판매가 매출의 96~99%를 차지하고, 수탁저장 수입과 인프라 매출이 나머지를 채운다. 숫자만 보면 전형적인 단일 품목 유통업체다. 그런데 이 구조를 표면 그대로 읽는 건 좀 억울하다.
울산GPS는 LPG를 직접 연료로 쓰는 가스복합발전소인데, 이 발전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LPG 판매처 확보와 발전 수익이 동시에 생긴다. 마치 한쪽 손으로 원재료를 사고 다른 손으로 그걸 전기로 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LPG 가격이 오르면 원가 부담이 되지만, 발전 수익도 함께 오르는 측면이 있다. 완벽한 위험 분산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다만 내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 — 울산GPS의 실제 상업가동률이 공개 데이터만으로는 정밀하게 추적하기 어렵고, 이 변수가 결국 발전 수익의 크기를 결정짓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이 울산GPS의 가동 안정화다. 이게 실제로 안착되면 기저에 깔린 수익 구조가 달라진다. 에프앤가이드 기준 FY2026 기본 시나리오는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4,684억원인데, 울산GPS 가동이 20% 더 올라오는 강세 시나리오에서는 영업이익이 5,621억원까지 올라간다. 이 차이가 바로 지금 이 주식에서 시장이 가격을 다 매기지 않은 부분이라고 나는 본다.
현금흐름도 한번 봐야 한다. 에프앤가이드 기준으로 FY2025 분기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Q1 2,360억원, Q3 2,068억원, Q4 2,062억원 수준이었다. Q2가 235억원으로 주저앉았는데, 이건 운전자본 변동(-1,849억원)이 집중된 분기였다. 연간으로 보면 영업에서 돈을 실제로 벌고 있다는 건 확인된다. 투자활동에서 Q4에만 3,214억원이 나갔는데, 이게 울산GPS 관련 투자라면 지금 쓰는 돈이 나중에 발전 수익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지금 당장은 현금이 팍팍해 보이지만, 씨앗을 심는 국면이라고 읽는 게 맞다.
중동발 공급 불안이 오히려 방어적 가치를 부각시킨다
올해 중동 긴장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까지 번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크게 출렁였고, KOSPI는 기록적인 낙폭을 경험했다. 야후 파이낸스 기준으로 WTI는 105.4달러까지 올라왔다. KRX 기준으로 최근 3개월 KOSPI는 고점 6,750.3p에서 저점 4,949.7p까지 1,800포인트 가까이 흔들렸다.
이런 장에서 에너지 기업이 어떻게 되냐고? 보통은 원가 부담 우려에 눌리는데, SK가스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국내 LPG 시장 점유율이 에프앤가이드 기준 34.7%다. 3분의 1을 넘는 점유율은 가격 협상에서 뒷걸음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LPG 공급가가 11% 올랐다고 해서 마진이 그대로 11% 깎이는 구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AI 반도체 붐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국면에서 발전 사업을 갖고 있다는 건,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 CEO 윤병석이 FY2025 세전이익이 전년 대비 545억원 증가한 3,142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힌 배경이기도 하다.
동종 업체들과 비교해도 SK가스가 상대적으로 좋아 보인다. 에프앤가이드 기준 FY2025 Q4 기준으로 E1의 영업이익률은 0.93%, SK가스는 1.77%다. 양쪽 다 낮긴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 SK가스가 거의 두 배 가까운 마진을 냈다. PBR은 0.91배로 장부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게 그냥 싸다는 뜻인지, 영구적으로 할인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발전 사업이 수익 다변화의 증거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면 전자 쪽이 맞다고 본다. 물론 에너지 유통주에 높은 멀티플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이고, 내 시각이 낙관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한 가지 걸리는 건 환율이다. 한국은행 ECOS 기준으로 원/달러가 1,475.7원이다. LPG를 달러로 사 와서 원화로 파는 구조이니, 환율이 높을수록 원가 부담이 커진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비슷한 공급망 위기가 있었던 과거 사이클을 돌아보면, 시장은 대체로 원가 상승 속도보다 가격 전가 시차를 과도하게 겁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기업이 가격 협상력을 가지고 있으면, 충격은 분기 하나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물론 내가 틀릴 수 있다. 내 논지가 무너지는 조건은 하나다 — FY2026 연간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인 4,684억원을 10% 이상 밑돌고, 동시에 울산GPS 가동률이 목표 대비 미달 공시가 나오면 내가 틀린 것이다.
지금 이 주식은 장부가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발전 사업이 실제로 숫자를 내기 시작한 회사다. 그 간극이 메워지는 속도를 시장이 얼마나 빨리 가격에 반영하느냐가 관건이고, 나는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 보통 시장은 사이클 전환을 너무 늦게 알아채거나,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