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분기 영업손실 1,556억 원(야후 파이낸스 애널리스트 컨센서스 기준) —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하나는 “여전히 손실이구나”였고, 다른 하나는 “근데 방향이 바뀌었네”였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 폭이 64% 줄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막 첫 줄이 쓰이기 시작한 이야기다. 주가가 실적 발표 이후 7%대 급등하면서 시장도 그 첫 줄을 읽긴 읽었다 — 다만 내가 보기엔 아직 뒷장을 넘기지 못한 것 같다.
차트 속 주가 흐름을 보면 이야기의 밀도가 좀 더 선명해진다. 2월 초 356,000원까지 눌렸던 주가는 2월 하순부터 방향을 틀어 3월 초 466,000원까지 올라섰고, 4월 28일 실적 발표 이후 680,000원까지 뛰었다. 저점에서 현재가까지의 상승 폭이 거의 두 배에 가깝다는 건, 시장이 단순한 기술적 반등이 아니라 무언가 구조적인 변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야후 파이낸스 기준 애널리스트 컨센서스 평균 목표주가가 478,834원으로 현재가 680,000원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 목표주가 최고치가 880,000원까지 벌어져 있어 이 괴리 자체가 “미반영 구간”의 크기를 암시하지만, 반대로 현재가가 이미 컨센서스를 선행한 만큼 실망감에 취약하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번 실적 개선의 핵심 동인은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판매 호조와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 원통형 배터리 공급 확대, 이 두 축이다. 특히 미국에서 ESS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 미국 정부가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미국 현지 제조 배터리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라는 형태로 현금을 얹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AMPC 수혜가 영업손실 축소의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점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개선 동력임을 뜻한다.
관세라는 지각 변동이 만든 기회의 지형
여기에 관세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진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 공급망 재편과 관세 장벽이 강화되면서, 현지 생산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삼성SDI에게는 진입 장벽 자체가 방어 수단이 되고 있다. 비슷한 공급망 재편의 파도가 몰아쳤던 과거 사이클을 기억하는데, 그때도 처음엔 “어차피 중국이 가격으로 이긴다”는 회의론이 시장을 지배하다가 실제 수주와 납품 데이터가 쌓이면서 뒤늦게 재평가가 이뤄졌다. 지금이 딱 그 중간 어딘가 같다는 느낌이 든다 — 방향은 분명한데, 시장이 완전히 믿기를 주저하는 구간.
AI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ESS 수요는 전기차와는 독립적인 성장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구조적 수요 증가는 리튬 등 핵심 광물 가격 변동이라는 단기적 원가 압박을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로 상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다. 삼성SDI의 고부가 원통형 배터리 공급 확대가 단순한 제품 믹스 개선이 아니라 영업 레버리지의 구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기 수주 파이프라인도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기업 벤츠와의 차세대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은 수주 잔고 확보를 통한 수익성 레버리지 강화의 신호탄이다. 여기에 전고체 배터리 양산 로드맵이 가시화되면서 시장의 밸류에이션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 전고체 배터리의 실제 양산 수율 안정화 속도는 아직 불확실하다. 경쟁사 대비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건 맞지만, 상용화 시점이 늦어질 경우 단기 실적 가시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변수다. 이건 내가 낙관론에 무게를 두면서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급 측면에서는 기관 투자자가 약 173억 원 순매수를 기록하며 매수 우위를 보였다. 실적 턴어라운드 확인에 따른 포트폴리오 재조정으로 읽히는데, 외국인의 차익 실현 매물 출회에도 불구하고 주가 방어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기관이 손실 기업에 돈을 넣는다는 건, 다음 분기 숫자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있다는 뜻이다 — 물론 기관도 틀리지만, 방향성에 대한 베팅이 시작됐다는 신호로는 충분하다.
현금흐름 측면도 빠뜨릴 수 없다. 영업이익은 적자인데 영업현금흐름이 양(+)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이 회사가 회계적 손실은 크지만 현금 자체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타들어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비유하자면 성적표는 빨간 줄이지만 지갑은 아직 텅 비지 않은 상태 — 흑자 전환까지 버틸 체력은 있다. 매출이 줄어드는 국면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온 점 역시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기술에 대한 베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단기 실적을 누르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 회사를 길게 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이 모든 논거가 무너지는 조건을 분명히 해두겠다. 2026년 하반기 분기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실패한다면, 지금의 주가 수준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현재가 680,000원이 컨센서스 평균 478,834원을 이미 40% 이상 웃돌고 있다는 사실은, 시장이 턴어라운드를 상당 부분 선반영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다음 분기 숫자가 이 이야기를 이어가줘야 하는 부담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이 주식이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 당신은 이 회사가 저점을 찍고 올라오는 국면의 초입에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아직 바닥을 확인 중인 구간이라고 보는가. 나는 전자라고 본다. 하지만 손실 기업의 턴어라운드를 믿는 데 필요한 건 믿음이 아니라, 다음 분기 숫자가 이야기를 이어가줄 때까지 버티는 인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