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 발언 하나가 이렇게 많은 걸 함축할 줄은 몰랐다. 젠슨 황이 GTC 2026 무대에서 “Thank you Samsung”이라고 말한 건 30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을 테지만, 그 무게는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다. HBM 협력을 넘어 파운드리 위탁생산까지 관계를 확장하겠다는 신호로 읽히는 순간, 삼성전자의 포지션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AMD 리사 수 CEO의 방한 일정도 우연이 아니다. 18일 삼성전자 방문이 예정돼 있다는 건,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들의 삼성 파운드리 러브콜이 동시다발로 표면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와 AMD가 비슷한 시점에 삼성에 접근한다는 건—이건 좀 놀랍다, 진짜로—삼성이 협상 테이블에서 생각보다 꽤 강한 패를 들고 있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지금 AI 공급망 안에서 단순 부품 납품사에서 구조적 파트너로 전환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선점을 내준 건 사실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向 매출로만 23조 원을 기록했다는 수치는 꽤 무겁게 들린다. 하지만 바로 그 격차 때문에,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단일 공급 의존 구조는 부담이다. 젠슨 황의 “생큐”는 그 맥락에서 다시 읽힌다.
이게 핵심인데, 파운드리는 HBM과 다른 게임이다. HBM은 이미 승자가 갈린 시장처럼 보이지만, 파운드리는 아직 판이 열려 있다. TSMC가 2024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약 62%를 점유한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100% 위탁하는 구조에서 일부라도 삼성으로 이관된다면 그건 수주 숫자가 아니라 공급망의 지정학적 재편이다. 2021~2023년 사이 삼성 파운드리 점유율이 18%에서 11%대로 밀린 걸 생각하면, 지금이 반등의 마지막 창일 수도 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기지를 자국과 동맹국 내에 분산시키려는 흐름과도 방향이 맞닿아 있다.
수급 환경도 나쁘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웨이퍼 수급난으로 2030년까지 메모리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건 경쟁사 수장의 발언이지만, 역설적으로 삼성에게도 호재로 작용한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장기화된다면, 파운드리든 메모리든 생산능력 자체가 협상력이 된다. 2026년 3월 17일 기준 USD/KRW 환율이 1,491원 수준이라는 점도—원화 약세가 불편한 신호이긴 하지만—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반도체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원화 환산 수익에 구조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삼성 파운드리는 수율 문제로 수년째 시장 신뢰를 회복 못 했다는 평가가 업계에 남아 있다. 그걸 부정하면 이 글은 홍보문이 된다. 젠슨 황의 발언이 실제 물량 계약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이고, 가능성을 수익으로 치환하는 건 삼성이 증명해야 할 몫이다. 다만 한 가지 짚어둘 게 있다—삼성이 2025년 하반기부터 GAA 2나노 공정 양산을 본격화하면서, 최근 테스트칩 수율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업계 안팎의 얘기가 슬슬 나온다. 아직 TSMC N2와 직접 비교할 단계는 아니지만, 6개월 전과 분위기가 다르긴 하다.
삼성전기가 스페이스X에 MLCC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 맥락에서 흘려듣기 아깝다. 그룹 내 부품 계열사들이 AI, 우주, 방산 수요망 안에 조용히 편입되고 있다는 건, 삼성이라는 생태계 전체가 글로벌 첨단 수요와 연결고리를 넓히고 있다는 신호다. 현대차가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협업을 선제 도입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깊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3월 17일 KOSPI가 5,640.5pt로 전일 대비 1.6% 오른 건—장중 한때 5,717pt까지 찍었다—이 기류를 시장이 어떻게 읽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52주 최고가 6,347pt였다는 사실을 함께 놓으면, 시장은 아직 그 고점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낙관과 경계가 동시에 작동 중이다—란 말이다.
삼성전자가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파운드리 수율 개선의 속도, AI 반도체 로드맵과의 정합성, 그리고 협상 타이밍—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젠슨 황의 “생큐”는 그냥 인사말로 끝난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엔비디아와 AMD가 동시에 삼성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다.
세계 최고의 AI 기업이 “생큐”라고 말할 때, 그게 진심인지 외교적 수사인지는—삼성이 다음 분기 실적으로 답해야 한다. 젠슨 황은 감사 인사를 먼저 하고 계약서는 나중에 꺼내는 스타일이니까.